뒤늦게 우영우에 빠진 인턴이 알려주는 보호수의 세계 (2)
지난주에 이어 보호수 이야기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1편에서는 데이터를 돋보기 삼아 보호수의 세계를 들여다보았는데요. 보호수의 정의부터 수종, 구분 유형, 나이 그리고 보호수를 찾는 우리의 노력까지 알아보았습니다. 그렇다면 보호수의 현재 상황은 어떨까요? 이들은 잘 지내고 있을까요?
먼저, 이번 글의 주제를 보여줄 수 있는 사례 하나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몇 달 전, 우리나라 전역을 강타했던 ‘힌남노’ 기억하시나요? 이 힌남노의 강력한 바람으로 인해 울릉도 해안 절벽에 있던 향나무가 부러졌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있었습니다. 1998년 보호수로 지정된 이 나무의 나이는 무려 2000~2300년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나무였습니다.
울릉도 향나무의 사례처럼 보호수로 지정된다고 해도 안심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많은 보호수가 태풍을 비롯한 다양한 원인으로 그 가치를 잃기도 하는데요. 이번 글에서는 ‘현재 보호수가 제대로 보호를 받고 있을까?’에 대한 답을 보호수 피해 현황 데이터로 찾아 보려고 합니다.
본격적인 분석을 위해서는 ‘보호수의 피해 현황’ 데이터가 필요했는데요. 이를 위해 산림청에 관련 데이터를 정보공개 청구하였어요. 제공받은 데이터셋에는 지난 6년간(2017~2022) 제대로 보호받지 못해 피해를 입고, 결국 지정이 해제된 보호수에 대한 정보가 담겨 있었습니다. 나무의 종류, 나이와 같은 기본 정보와 함께 피해 유형, 지정 해제일 등을 나무별로 확인할 수 있었어요.
1. 자연재해로 사라져가는 보호수들
구체적인 분석에 들어가기 전, 피해를 입고 지정이 해제된 보호수의 현황을 먼저 확인해보겠습니다. 현재까지 지정된 보호수는 총 13,859그루, 이 중 2017~2022년 동안 지정 해제된 보호수는 538그루였어요. 즉, 매년 약 90그루의 보호수가 피해를 받고 있다는 뜻인데요. 이를 연도별로 시각화한 것이 바로 위의 막대차트입니다. 차트를 보면 유독 2019년에 지정이 해제된 보호수가 많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바로 ‘태풍’입니다. 2019년은 유독 우리나라에 영향력을 행사한 태풍이 많았던 해였어요. 그 중에서도 태풍 ‘링링’의 영향력은 보호수도 무시할 수 없었습니다. 인천의 경우, 우리나라의 서쪽으로 북상한 ‘링링’으로 인해 4그루의 보호수를 잃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몇백 년을 뿌리내린 보호수도 거대한 기상 변화 앞에서 고개를 숙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보호수의 피해 원인을 살펴볼까요?
산림청에서 제공받은 데이터셋은 보호수 피해 원인을 ‘생육불량’, ‘자연재난’, ‘병충해’, ‘훼손’으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보호수는 자연재난뿐만 아니라 생육 상태가 좋지 않아 고사하거나 병균·벌레, 그리고 사람의 훼손으로 피해를 보기도 합니다. 그 중 ‘생육불량’과 ‘자연재난’은 피해 유형의 89%를 차지하는데요. 이 두 가지 요인에 집중해 연도별 변화를 확인해보겠습니다. (*고사 : 나무나 풀이 말라 죽음)
‘자연재난’은 다른 원인에 비해 연도별 값의 격차가 매우 큰데요. 언제 어디서 발생할지 모르는 재난의 특징이 반영되었기 때문입니다. 차트를 보면 태풍 ‘링링’이 북상했던 2019년 이후로 피해 보호수가 점차 줄어들고 있지만 올해 ‘힌남노’가 변화의 추세를 뒤집을 것으로 보여요. 실제로 ‘힌남노’로 인한 보호수 피해 관련 기사는 25건으로 앞서 언급한 ‘링링’(17건)보다 더 많은 기사가 보도되었습니다.
이번에는 ‘생육 불량’을 볼까요? 건강이 좋지 않은 보호수는 해마다 평균 47그루로, 네 가지의 피해 원인 중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는데요. 나이가 많은 보호수는 겉은 우람해 보일지라도 그 속은 쇠약하기 때문입니다. 한편, 나이가 적은 보호수 또한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피해 보호수의 나이 분포를 살펴보면 60살, 80살 등 100살 이하인 나무도 존재해요. 전체 보호수의 평균 나이가 380살인 점을 고려하면, 비교적 어린 나무도 생육 상태가 결코 안정적이지 못할 수 있습니다.
2. 보호수가 있었는데요, 없었습니다.
1972년 산림청이 보호 가치가 있는 나무를 법에 명시한 지도 벌써 5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는데요. 현재는 지정이 해제된 나무들이 ‘보호수’로서 법의 울타리 안에 있던 시간은 ‘평균 30년’으로 나타났어요. 그러나, 앞서 언급한 자연재해가 잦아지고 나무의 생육 상태가 점점 저하됨에 따라, 보호수로 지정되자마자 바로 해제되는 황당한 경우가 발생하기도 합니다.
이를 데이터로 확인하기 위해 보호수의 지정부터 해제까지의 기간이 짧은 나무 TOP5를 덤벨 차트(Dumbbell Chart)로 시각화하였어요. 파란색 원은 지정 연도를, 주황색 원은 해제 연도를 의미합니다.
각 나무에 얽힌 이야기를 살펴볼까요? 가장 상단에 있는 나무는 2019년도에 보호수로 지정이 되었다가 같은 연도에 해제되어 마치 원이 1개인 것처럼 보이네요. 1년이 채 되지 않아 보호 목적을 상실한 이유는 바로 자연재난이었습니다.
이렇게 천재지변으로 해제된 나무도 있는 반면, 생육 상태가 불량해 2년 만에 ‘보호수’라는 타이틀을 잃은 안타까운 나무도 보입니다. 두 번째 나무의 경우 600살이지만 비교적 최근에 지자체에 발견되어 보호수로 지정이 되었는데요. 아쉽게도 지정된지 2년 만에 생육 상태가 좋지 않아 결국 고사하고 맙니다. 바로 아래에 같은 원인으로 고사한 나무가 한 그루 더 있는데요. 이 나무의 나이는 60살로 아직 100살이 되지 않은 어린 소나무였어요. 나이와 상관없이 나무가 더 오랜 기간 보호받기 위해서는 생육 환경 개선이 필요해 보입니다.
3. 이미 정해져 있던 보호수의 미래
‘나이’와 같은 자연적인 요인과 상관없이 보호수가 건강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많은 전문가는 그 이유로 ‘도시화’를 지목합니다. 농촌이 도시로 발전해감에 따라 보호수 주변 역시 많은 변화가 이루어졌기 때문이에요. 보호수가 살던 땅은 사람과 차가 다니기 위한 도로로 포장되고, 높은 건물에 둘러싸여 햇빛을 받지 못하는 등 보호수의 건강을 위협하고 있어요.
이러한 보호수의 상황을 데이터로 확인해볼까요? 이를 위해 1탄에서 사용한 보호수 지정 데이터를 다시 꺼내어 ‘지목’을 분석해보았어요. ‘지목’이란 임야, 하천, 도로, 학교 등 토지의 용도를 뜻하는데요. 24개의 지목을 ‘인공지반’과 ‘자연지반’으로 분류하여 보호수가 심어진 땅의 특징을 확인해보았습니다. (참고 : 건축법에 고시된 조경기준)
자연지반은 인공구조물이 없는 자연 그대로의 순수한 지반을 의미합니다. 즉 하천, 임야처럼 지하에 구조물이 없어 자연 순환이 원활한 곳을 말해요. 이와 반대로 인공지반은 땅 위에 구조물을 쌓고 그 위에 흙을 얹어 인위적으로 조성된 지반을 의미합니다. 그 예로는 공원, 학교, 주차장 등에 속한 부지들이 있어요. 이제 보호수가 심어진 지반의 현황을 지역별로 살펴볼까요?
위 차트는 시도별로 인공지반과 자연지반의 비율을 시각화한 차트입니다. 대도시 서울은 보호수의 78%가 인공지반에 심겨 있는데요. 서울 못지않게 제주도 또한 그 수치가 76%로 두 번째로 높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이렇게 인공지반의 비율이 높은 지역에서 보호수는 주로 도로나 건물 부지에 심겨 있었어요.
안타까운 사실은 16곳의 지역 중 이미 10곳에서 인공지반의 비율이 자연지반보다 높다는 점이에요. 이름에서도 추측할 수 있듯이, 인공지반은 나무가 제대로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이 되지 못합니다. 이미 땅 아래에 시멘트나 콘크리트가 칠해져 있어, 수분과 산소가 땅으로부터 흡수되지 못하고 나무의 뿌리가 자랄 수 있는 공간을 침범하기 때문인데요. 이처럼 4~50년 전부터 전국 곳곳에서 진행된 도시화는 보호수의 어두운 미래를 이미 암시하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에디터의 한마디
이번 여정은 ‘실제로 보호수가 이름에 걸맞은 보호를 받고 있을까?’에 대한 질문으로 출발하였습니다. 관련 데이터를 탐색해본 결과, 자연재난과 생육불량으로 인해 피해를 입은 보호수가 많았는데요. 특히 생육이 불량한 이유에는 ‘도시화’와 같은 인위적 요인이 작용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 보호수로 지정된 지 얼마 되지 않아 해제되는 경우도 발생하였어요.
이번 주제는 다소 무거운 감이 있지만, 긍정적인 점은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출발점으로, 보호수에 대한 관심이 조금씩 싹트고 있다는 점입니다. 산림청은 올해부터 보호수의 생육진단 및 실태조사 사업을 실시하기로 발표했고, 최근 MBC 경남에서는 ‘뿌리깊은 나무’라는 이름으로 노거수를 찾기 여정을 담은 다큐멘터리로 방영하고 있습니다. 이에 힘입어 보호수가 안심할 수 있는 곳에서 성장하고 새롭게 지정될 보호수들이 더 늘어나길 기대해봅니다 : )
*참고자료
– 김두한, 태풍 ‘힌남노’에 뽑힌 울릉도 향나무…울릉도관문 도동항 문지기역할, 2022-09-08, 경북매일
– 김현정, 서울시 보호수의 생육환경 및 관리실태 조사연구-느티나무(Zelkoba serrata)를 중심으로, 2007, 한국전통조경학회지
– 산림청, 보호수의 역사·문화적 가치를 지속하기 위해 노력한다, 2022-07-26, 대한민국 정책 브리핑
– 이정하, 태풍 ‘링링’ 강타 인천…50년 수령 ‘보호수’ 부러지고 뽑히고, 2019-09-09, 한겨레
– 장동수, 사진을 통해 본 보호수 변천과정 및 보전방안 연구 – 평태시 보호수를 대상으로, 2008, 한국전통조경학회지
Editor. 브랜드 마케팅팀 수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