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시각화 유형으로 보는 인권 리스크
작년 6월, 명품 브랜드 D사의 가방이 하청 업체의 노동 착취를 통해 만들어졌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공급망 내 인권 침해가 화두에 올랐습니다. 해당 브랜드에서는 외국인이 운영하는 하청 업체에 생산을 맡기고, 하청 업체는 이주 노동자를 고용해 불법 노동을 시켰는데요. 특히 노동 착취로 만들어진 제품이 원가의 약 50배 가격으로 판매되어 기업은 막대한 이익을 남기고 있다는 점이 소비자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죠. 그리고 지난 3월, D사에서 불법적인 공급 업체에 대한 통제 절차를 채택하고 공급망 관리를 강화했다는 명목 하에 법정 관리가 해제되었다고 하는데요! 이렇게 여전히 세계 곳곳에서 노동·인권 관련 문제가 발생하고 있기 때문에, 유엔과 EU에서는 기업이 스스로 부정적 영향을 방지하도록 하는 규제인 공급망 인권 실사 및 공급망 관리를 의무화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글로벌 공급망을 보유한 기업이라면, 전 세계에 걸친 협력사 근로자들의 노동 환경과 기업 활동이 사회 전반에 미치는 인권 영향까지 관리해야 하는데요! 그럼 기업은 어떻게 공급망 내 인권 리스크를 측정하고 관리해야 할까요? 오늘은 공급망에서 발생 가능한 인권 문제를 나타낸 시각화 사례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인권 리스크를 국가별로 시각화한 사례뿐만 아니라, 보다 구체적인 기업 사례를 통해 기업이 공급망 인권 리스크를 관리하기 위해 시각화를 활용하는 방법을 알아보겠습니다.
1. 국가별 빈곤 지수와 현대판 노예제 간의 관계를 보여주는 버블 차트
가장 먼저 소개해 드릴 사례는 전 세계의 국가별 빈곤 지수(Poverty Index)와 현대판 노예제(Modern slavery violations)의 위험 수준을 시각화한 버블차트입니다. 먼저 Y축 변수인 빈곤 지수는 빈곤 상태를 다면적으로 측정하는 지표입니다. ‘1달러 미만의 하루 생계비’와 같은 금전적 빈곤을 비롯하여, ‘아이들이 학교에 등록되어 있는지’, ‘집에 전기가 공급되는지’ 등의 10개 항목을 통해 산출됩니다. 그리고 X축 변수인 현대판 노예제는 인신매매, 아동착취, 강제노동 등 ‘개인의 비자발적 노동을 강제하거나 착취하는 모든 상황’을 의미하는데요. 노동자를 고용하는 과정, 근로 환경, 기업의 인권 위험 완화 노력 등을 평가할 때 활용하는 지표입니다.

사례에서 각 원은 특정 지역을 의미하는데요. 원의 색상은 국가를, 원의 크기는 해당 지역의 인구수를 나타냅니다. 원들의 분포를 보면 우상향하는 형태를 띠고 있어 두 변수 간의 ‘양의 상관관계’가 있다고 해석할 수 있는데요. 빈곤지수가 높을 수록 현대판 노예제도 함께 증가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차트의 좌측 하단을 보면 일본과 독일, 미국 등의 지역이 집중되어 있는데요. 이 국가들은 빈곤 지수와 현대판 노예제의 위험도가 낮은 동시에, 점들의 거리가 가까워 지역 간 격차도 적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반면에 우측 상단에는 인도(연두색)와 마닐라(주황색), 그리고 중국(분홍색)과 인도네시아(노란색), 방글라데시(보라색) 등의 지역이 분포하고 있는데요. 이 국가들은 점들이 위아래로 퍼져있어, 지역 간에 빈곤 지수가 크게 차이 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한편, 차트 우측에 있는 중국, 인도, 인도네시아 등의 국가들은 글로벌 기업의 주요 제조 기반이 위치한 ‘아시아 제조 허브’라는 공통점이 있는데요! 인구가 많아 노동력 규모가 크고 지역별로 경제력 차이가 크다는 특성을 갖고 있습니다. 이런 지리적 특성을 함께 고려해서, 우리 회사 공급망 내 협력사가 구체적으로 어떤 지역에 해당하는지에 따라 차등을 두고 인권 리스크를 측정한다면 더 정확한 위험 예측이 가능하죠!
2. 국가별 공급망 인권 법률 제정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지도 시각화
각 정부가 자국에서 발생하는 인권 문제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 또한 리스크 측정에 중요한 지표가 될 텐데요. 현재 세계 각국에서는 기업 및 공급망 내에서 인권 침해가 발생할 경우 해당 조직에 책임을 묻는 법률을 제정 중에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미국 캘리포니아 주의 ‘공급망 투명성 법률’이나 영국의 현대판 노예법에 명시된 ‘공급망 투명성 조항’ 등을 들 수 있어요. 하지만 입법과 시행 과정에서 각국은 큰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위 사례는 강제노동과 노동착취 등 현대판 노예 발생에 대응하기 위한 국가별 법적 규제 현황을 나타낸 지도 시각화입니다. 범례에 따르면 법률이 통과되어 시행 중인 국가는 빨간색, 통과되었으나 아직 법률 시행 전인 국가는 하늘색, 입법 단계인 국가는 줄무늬, 해당 사항이 없는 경우에는 남색으로 나타냈습니다. 사례를 살펴보면 공급망 인권에 관한 법률 제정 및 시행 현황이 대륙별로 유사하다는 인사이트를 발견할 수 있는데요! 예를 들어, 법률이 통과되어 이미 시행되고 있는 국가(빨간색)는 북아메리카의 미국과 멕시코, 유럽의 프랑스와 스웨덴, 그리고 호주 등입니다. 또, 아직 시행 전이지만 법률이 통과된 국가(하늘색) 또한 북아메리카와 유럽 대륙에 위치해 있어요. 하지만 아시아와 아프리카, 남아메리카에서는 우리나라와 같이 입법이 진행되는 과정에 있는 경우(줄무늬)를 제외하고는 해당 사항이 없는 국가(남색)가 대부분인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기업이 여러 국가에 걸친 협력사와 관계 맺고 있다면 다양한 법률의 범위 안에 포함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때 자사 공급망의 협력사 및 시설의 위치를 위 지도 시각화와 대조해 보는 방법으로, 기업이 대응해야 할 법적 규제를 가늠해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지도 시각화에 국가별 규제 현황을 지속적으로 업데이트한다면, 공급망 범위의 인권 리스크를 모니터링하는 도구로 사용할 수 있어요.
3. 기업의 공급망 인권 리스크 관리를 위한 히트맵
지금까지 인권 실태를 파악할 수 있는 데이터 시각화 사례를 살펴봤습니다. 글로벌 공급망을 보유한 기업이라면 협력사와 시설이 위치한 국가 및 지역의 인권 실태를 측정하고 수합해서, 공급망 전반의 리스크 수준을 관리해야 하는데요! 이때 기업은 n차 협력사의 노동자부터 기업의 제품을 구매하는 소비자, 기업과 연결된 지역사회까지 공급망의 다양한 측면에서 사회에 끼칠 인권 영향을 고려해야 합니다. 방대한 범위의 공급망을 기업은 어떻게 관리해야 할까요? 지금부터는 우리에게 친숙한 편의점 브랜드 ‘세븐일레븐’을 운영하는 일본 기업 SEVEN&i Holdings가 공개하고 있는 공급망 내 인권 위험 정보 사례를 통해 기업의 공급망 인권 리스크 관리 방법을 소개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위 시각화는 SEVEN&i Holdings의 인권 리스크를 시각화한 히트맵입니다. 사례에서는 해당 기업과 공급망에서 발생할 수 있는 인권 문제를 근로자, 소비자, 지역 커뮤니티로 이해관계자에 따라 분류했습니다. 그리고 각 인권 문제 항목을 심각성(Severity)과 발생 가능성(Likelihood)라는 두 가지 변수로 측정했는데요. 이때, 심각성은 0~5점, 가능성은 0~10점 척도로 측정값을 환산해서 나타냈어요. 각각의 셀(cell)을 보면, 해당하는 값을 색상과 그 색의 농도로 표현했습니다. 값이 클수록 더 진한 빨간색으로, 반대로 값이 낮을수록 더 진한 푸른색을 사용했어요.
히트맵을 보면 심각성(Severity) 열보다 발생 가능성(Likelihood) 열의 셀들이 진한 빨간색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 가장 먼저 눈에 띄는데요. 이를 통해 해당 기업의 인권 리스크가 실현될 경우의 심각성보다는, 리스크가 발생할 가능성 자체가 더 높다는 점이 현재 시급하게 대응해야 하는 문제임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또한, 발생가능성 변수 중에서도 7&i 그룹보다는 자사 공급망의 셀들이 더 높은 값을 나타내고 있는데요. 특히 차별(Discrimination)과 조직할 자유 및 단체교섭권(Freedom of Association & the Right to Collective Bargaining) 등의 문제가 공급망 내부에서 발생할 위험이 큽니다. 공급망의 인권 리스크를 관리하고 있다면, 이렇게 높은 위험 점수를 나타내고 있는 특정 항목을 우선 해결해야 할 과업으로 설정할 수 있어요.
위 히트맵에서는 셀의 색상과 농도에 따라 위험도가 높은 인권 리스크 항목을 직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는 점이 특징인데요! 그런데 문제의 심각성과 발생 가능성이라는 각각의 변수를 따로 보지 않고, 동시에 고려하여 위험도를 확인하고 싶다면 어떨까요? 이를 목표로, 같은 데이터를 다른 시각화 유형으로 나타낸 사례를 살펴보겠습니다.

위 시각화는 앞서 살펴본 각 인권 문제 항목을 심각성과 발생 가능성에 따라 점으로 찍어 나타낸 산점도입니다. 빨간 원 모양의 점은 기업 범위의 인권 리스크를, 초록색의 사각형 점은 공급망 범위의 인권 리스크를 나타냅니다. 차트의 Y축은 심각성, X축은 발생 가능성으로 설정했어요. 이 차트에서는 좌표평면의 배경색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요. 심각성과 발생 가능성을 동시에 고려하여, 위험도에 따라 배경색을 초록색, 노란색, 빨간색의 순서로 분류했습니다. 특정 인권 항목의 위험도를 확인하고 싶을 때, 해당 점이 위치한 배경의 색상을 보면 해당 항목의 리스크가 얼마나 위험한지를 빠르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
차트를 보면 빨간 원 모양(기업 범위의 인권 리스크)의 점들은 대다수가 노란색 영역에 위치해 있지만, 초록색의 사각형 점(공급망 범위의 인권 리스크)들은 주로 빨간색 영역에 위치해 있어요. 이를 통해 심각성과 발생 가능성 두 변수를 모두 고려했을때에도, 기업 범위의 인권 문제보다 공급망 범위의 리스크가 더 크다는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습니다.
제가 만약 해당 기업의 인권 리스크 관리 담당자라면, 공급망(초록색 사각형) 범위의 산업 안전 및 건강(Occupational Safety and Health) 항목에 주목할 것 같은데요! 차트 우측 최상단에 위치해 있어, 심각성과 발생 가능성이 모두 높기 때문에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리스크로 볼 수 있습니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공급망 전반의 근로 환경을 검토하고 근로자의 건강 상태를 추적하는 등의 리스크 대응 전략을 세울 수 있어요.
에디터의 한마디
오늘은 국가별 인권 실태를 파악하기 위한 인권 시각화 사례와, 이를 바탕으로 SEVEN&i Holdings의 공급망 인권 리스크 시각화 사례를 살펴봤습니다. 인권 데이터 관리 항목에 다양한 변수가 포함되어 있음을 알 수 있었고, 기업이 공급망의 인권 리스크를 관리하는데 다양한 시각화 유형을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어요.
환경 분야의 경우 온실가스나 폐기물 배출량 등 명확한 정량 지표가 널리 사용되고 있는 반면에, 인권 분야에서는 어떤 지표로 기업 공급망의 인권 위험을 측정해야할지부터 고민해야 합니다. 인간 고유의 권리는 다양한 사회적 측면에서 고려되어야 하기 때문에 단일 기준을 가지고 평가하기 힘들고, 이를 수치화하여 측정하기도 어렵기 때문이에요. 따라서 기업은 어떤 지표를 가지고 공급망 내 인권 리스크를 평가할지를 우선 판단하는 것이 중요한데요.
지표가 정해진다면, 다양한 지표를 통해 기업의 현 상황을 파악하고 리스크 관리 항목의 우선순위를 지정하는 등의 상황에 적절한 시각화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가시화 되지 않을 듯 막막한 인권 리스크 관리, 어떤 지표 관리가 필요할지, 어떤 시각화가 효과적일지 고민이 되신다면, 앞서 소개해 드린 시각화 사례들에 사용된 항목들을 참고해 보시는 건 어떨까요?
* 참고 자료
- LVMH 디올 이탈리아 계열사 ‘노동착취’ 법정관리 해제, 한국섬유신문, 2025-03-03
- 380만원 디올 백, 원가는 단 8만원…’노동착취’로 만든 명품, JTBC, 2024-06-13
- 김훈민, MPI(Multidimensional Poverty Index, 다면빈곤지수), KDI 경제정보센터
- Oliver Cushing, The essential guide to modern slavery risk assessment, Rights DD
Editor. 사업전략팀 홍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