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별 유행하는 이름, 데이터로 파헤쳐 보겠습니다!
이름은 나를 대표하는 상징이자 정체성을 부여하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인도의 콩통이라는 마을에서는 아기가 태어나면 엄마가 멜로디를 만들어주고 이를 이름으로 사용한다는데요, 어떤 단어도 포함하지 않은 소리이다 보니 동명이인이 없다고 합니다.
이처럼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이름’이 나를 나타내면 좋겠지만, 보통 두 글자 이름을 사용하는 우리나라는 여러 사람이 같은 이름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제가 학교 다닐 땐 ‘유진’이나 ‘민지, 지혜’가 같은 반에 여러명 있었어요. 이름이 똑같아 구분이 어려우니 키로 나눠서 ‘큰 유진’, ‘작은 유진’이라고 부르거나 아예 별명으로 부르고는 했었죠.
요즘 태어난 아기에게 ‘영자’라는 이름을 붙인다고 하면 촌스럽다는 느낌을 받는 것처럼, 그 시대마다 유행하는 스타일의 이름이 있는 것 같은데요! 그래서 비슷한 이름을 가진 친구들이 많은가 봅니다.
이번 글에서는 데이터를 바탕으로 시대별 이름의 유행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태어난 아이들의 이름뿐만 아니라 개명한 사람들의 이름도 확인해서 시대별로 비슷한 이름을 선호하는 것인지, 아니면 출생신고와 개명신청 때 선호하는 이름이 다르게 나타나는지 확인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름 데이터는 어디서 확인할 수 있을까?
이름에 관한 공공데이터는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요? 법원에서 제공하는 전자가족관계등록시스템 통계서비스에 접속하면 ‘상위 출생신고 이름 현황’ 데이터를 확인할 수 있는데요, 아쉽게도 2008년 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 시행 이후 가족관계등록부에 기록된 정보를 집계한 데이터라 이전 데이터는 확인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2008년 이전 시대에 유행한 이름은 알 수 없을까요? 포털사이트에서 시대별 선호하는 이름에 관한 다양한 기사를 확인할 수 있었는데요! 자료 출처가 대법원이라고 되어 있었지만, 대법원 홈페이지에서 해당 공공데이터를 찾을 수는 없었습니다.
‘사법부가 출범한 1940년대 이후 60여년 간 시대별로 출생신고한 이름 분석 결과’라고 명시되어 있고, 여러 언론 매체에서 해당 데이터를 활용했기에 이 글에서도 언론 매체에서 확인한 데이터를 활용해서 1900년대 유행한 이름 현황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900년대 유행한 이름은 무엇일까?
아래 이미지는 194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각 시대별로 유행한 남성과 여성의 이름을 정리한 표입니다. 1순위부터 5순위까지 이름을 볼 수 있는데요, 어떤 이름들이 유행했는지 자세히 볼까요?
1940~50년대에 많이 쓰인 남성의 이름을 보면 ‘영수, 영철, 영호, 영식, 영길’ 등 ‘영’자가 많이 보입니다. ‘영자, 영숙, 영희’ 등 여성의 이름에도 ‘영’자가 자주 보이네요. 이때 사용한 ‘영’의 한자는 ‘길 영(永)’으로 추정할 수 있는데요, 당시 열악한 위생 환경으로 인한 전염병, 전쟁 등으로 유아의 사망 확률이 높았을 것이고, 그래서 오래 살라는 의미의 ‘영’자가 들어간 이름을 많이 사용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반면, 1940~50년대 여성의 이름에는 ‘순자, 영자, 정자, 춘자’ 등 ‘자’자를 많이 사용했습니다. 일제강점기 당시 창씨개명으로 사용하던 ‘미츠코(光子)’, ‘준코(順子)’ 등 일본 이름을 해방 이후 한자 그대로 ‘광자’, ‘순자’처럼 부르게 되었는데요, 이 일본식 작명법이 그대로 남아 많은 이름에 ‘자’가 들어갔다는 이야기와, 남아선호사상의 여파로 다음 아이는 아들이었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여성의 이름에 ‘아들 자(子)’를 붙였다는 의견도 존재합니다.
1970년대 남성의 이름에는 ‘이룰 성(成)’, ‘밝을 성(晟)’ 등 성공하라는 의미를 담은 ‘성’자가 많이 들어가는데요, ‘한강의 기적’이라 불리는 초고성장 시대였던 만큼 아이의 성공을 바라는 부모의 마음이 담긴 것 같아요.
1980년대 이후 여성 이름에는 ‘지혜, 지영, 지은, 지현’처럼 ‘지’자가 들어간 경우가 많습니다. 1980년대는 2차 오일쇼크로 인한 경제적 불황과 민주화 실패 등 악재가 겹치며 암흑기로 불리던 시기인데요, 그래서인지 어렵고 힘든 시기에도 슬기롭고 지혜롭게 살라는 의미를 담아 ‘지혜 지(智)’가 유행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위 표에 나타난 194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출생신고 시 가장 많이 등록된 이름의 빈도를 살펴보면, 1940년대~1960년대 남성은 ‘영수’, ‘영호’가 1980년대 이후에는 ‘지훈’의 인기가 높았습니다. 여성은 1940~60년대에는 ‘영자’, ‘영숙’이, 1980년대 이후에는 ‘지혜, 지영, 지은, 지현’이 많이 보입니다. 어떠신가요? 시대별로 유행하는 이름이 어느 정도 비슷한 패턴을 나타내는 것 같지 않나요?
2000년대 이후 유행한 이름은 무엇일까?
그렇다면, 요즘 이름은 어떨까요? 법원에서는 전자가족관계등록시스템 통계서비스를 통해 2008년 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 시행 이후 가족관계등록부에 기록된 정보를 집계한 공공데이터를 제공하고 있는데요, 이 공공데이터를 바탕으로 2000년대 이후 유행하는 이름의 경향을 살펴보겠습니다.
위에 보이는 데이터 시각화는 2008년부터 2021년까지 연도별로 출생 신고가 가장 많이 된 이름을 나타낸 간트차트(Gantt Chart)입니다. 각 연도에 1위를 차지한 이름을 가로 막대로 표현하는데요, 막대의 길이가 길면 오랜 기간 1위가 이어졌다는 의미예요.
파란색은 남아, 분홍색은 여아의 출생 신고 당시 이름을 나타냅니다. 차트를 살펴보면, 최근 5년간 가장 많이 등록된 이름은 ‘민준’(남)과 ‘서연’(여)이에요. ‘민준’의 경우 2008년부터 2012년까지 가장 많이 등록됐다가 2015년과 2016년에 다시 1위가 됐어요. ‘서연’은 2008년부터 2013년까지 1위였고 이후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앞서 1900년대 유행한 이름과 2000년대 유행한 이름의 느낌이 다르지 않나요? 2000년대에는 ‘서’, ‘준’이 많이 보이는데요, 복되고 길한 일이 일어나고 높이 올라갔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상서로울 서(瑞)’, ‘높을 준(埈)’을 이름에 넣었나 봅니다.
또한, 2020년대에 가까워지면서 ‘지안, 서아, 이준’ 등 발음하기 쉬운 이름이 눈에 띄는데, 글로벌 시대에 맞춰 어느 나라에서나 쉽게 발음할 수 있는 이름을 선호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개명할 때 선호하는 이름은 무엇일까?
그렇다면, 개명은 어떨까요? 인생의 변화나 일이 잘 풀리기를 바라며 개명을 신청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는데요, 2000년대 초에는 사회적 혼란을 이유로 특별한 경우에만 개명을 허가했으나 2005년 대법원 판례(2005스26결정) 이후 개명 신청인의 의사와 필요성, 개명의 효과 등으로 인한 개인의 권리보호 측면을 중시하여 개명이 한결 수월해졌다고 합니다. 대법원 통계에 따르면 대법원 판례 직후인 2005년 12월 10,116명이 개명을 신청했고, 2021년에는 127,855명이 개명을 신청한 것을 보면 상당히 늘어난 수치임을 알 수 있습니다.
개명 데이터 역시 법원의 전자가족관계등록시스템 통계서비스에서 제공하는데요, 2011년 데이터부터 확인할 수 있어서 2011년부터 2021년까지 데이터를 가지고 현황을 파악해봤습니다.
2011년부터 2021년까지 유행한 개명 이름 순위는 범프차트(Bump Chart)를 활용해서 시각화했습니다. 범프차트는 시간에 따라 달라지는 항목별 데이터의 순위 변화를 표현하는 데 활용하는 차트인데요, 선의 높낮이 변화로 데이터의 추이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위 데이터 시각화는 2011년부터 2021년까지 10년간 개명한 남성의 이름 순위를 나타낸 범프차트입니다. 각 연도별로 1, 2, 3위를 차트로 보여주는데요, 한해도 빠지지 않고 ‘민준’이 1위를 차지하고 있어요. 앞서 본 연도별 유행한 이름에서 2000년대 들어 ‘민준’의 인기가 많아진 것과 연관이 있는 걸까요?
다음으로 많이 나타난 이름은 ‘현우’입니다. 2011년부터 2019년까지 순위 변동은 있지만 꾸준히 3위 안에 들었어요. ‘서준’과 ‘지훈’도 4번이나 등장해 인기 있는 이름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2011년부터 2021년까지 개명한 여성의 이름 순위도 살펴보겠습니다. 아래 이미지를 보면 2011년부터 2021년까지 10년 간 한해를 제외하고 꾸준히 3위 안에 들어간 이름은 ‘서연’과 ‘지원’입니다. ‘서연’은 2019년, ‘지원’은 2021년에만 3위 안에 들지 않아 지난 10년간 개명하는 사람들이 가장 선호한 이름임을 알 수 있습니다.
2018년부터 2021년까지는 ‘지안’이 쭉 1위를 차지하고 있는데요, ‘지안’은 2020년 기준 여아 출생 신고 3위, 남아 출생 신고 26위에 오를 정도로 인기가 높은, 남성이나 여성 모두에게 두루 사용하는 중성적인 이름입니다. 2010년대 후반부터 ‘남자다운’, ‘여자다운’ 성별의 경계를 허무는 ‘젠더리스(Genderless)’가 패션 업계는 물론 사회 분위기 및 개인 생활까지 트렌드로 자리 잡으며 중성적인 느낌의 ‘지안’이라는 이름을 선호한 것은 아닐까요?
개명할 때도 시대별 유행하는 이름을 선호할까?
앞서 살펴본 출생신고 시 유행하는 이름과 개명 신청할 때 유행하는 이름을 바탕으로 시대별로 비슷한 이름을 선호하는 것인지 비교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개명신청 시 선호도가 높은 1, 2, 3순위 이름을 기준으로 같은 기간 출생신고에서는 몇 위에 올랐는지 확인해서 연관성을 확인해볼게요.
아래 이미지는 2011년부터 2021년까지 선호도가 높은 남성 이름을 라인 차트(Line Chart)로 시각화한 차트입니다. 각 이름을 한눈에 비교하기 위해 동일한 데이터 값을 기준으로 한 동일한 유형의 시각화 차트를 나열한 스몰 멀티플즈(Small Multiples)를 사용했습니다.
개명신청 시 선호도가 높은 이름은 ‘민준, 현우, 서준, 지훈’을 기준으로 잡았는데요! 1~3위 안에 등장한 횟수로 선호도를 판단했고, ‘민준’은 11번, ‘현우’는 7번, ‘서준’과 ‘지훈’이 각각 4번 등장했습니다.
위의 라인 차트에서 파란색은 개명신청, 주황색은 출생신고의 순위를 나타내는데요, 개명신청에서 1순위를 유지했던 ‘민준’은 출생신고에서도 꾸준히 15위 안에 이름을 올렸지만 현재에 가까울수록 인기가 떨어지고 있습니다. ‘서준’도 2011년 개명신청을 제외하고 모두 16위 안에 들었고 시간이 지날수록 인기가 높아지는 추세를 보입니다.
‘지훈’과 ‘현우’는 개명신청에서는 상위권을 나타내지만, 출생신고에서는 2011년부터 순위가 떨어져 2017년부터는 20위권 안에 들지 않았습니다.
2011년부터 2021년까지 선호도가 높은 여성 이름도 볼게요! 남성의 이름과 마찬가지로 1~3위 안에 등장한 횟수로 선호도를 판단한 결과 ‘서연’과 ‘지원’은 10번, ‘수연’은 7번 등장했어요.
위의 데이터 시각화에서 회색 라인은 개명신청, 보라색은 출생신고 순위를 나타냅니다. 2011년부터 2021년까지 ‘서연’은 개명신청과 출생신고 모두 16위 안에 들어간 것에 반해 ‘지원’과 ‘수연’은 출생신고 때 선호하는 이름이 아니네요. 출생신고 이름 순위에서 ‘지원’은 2011년 18위, 2012년, 2014년 20위에 올랐고, ‘수연’은 20위 안에 한번도 나타나지 않습니다.
종합해보면 개명신청 시 가장 높은 순위를 차지했던 ‘민준’과 ‘서연’은 출생신고에서는 점점 순위가 떨어지고 있고, 다른 이름들은 아예 출생신고 순위에 나타나지 않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유일하게 ‘서준’만이 요즘에 가까울수록 개명신청과 출생신고 모두에서 높은 순위에 올랐네요.
출생신고에서 높은 순위를 차지한 이름과 개명신청에서 높은 순위를 차지한 이름이 다르게 나타나는 것은 시대별로 유행하는 이름이 있다고 해도 개명신청을 하는 사람의 나이대를 고려할 수밖에 없기 때문인 것이 아닐까 추측해봅니다.
시대별로 유행한 이름, 어떤 공통점이 있을까?
190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시대별로 유행한 이름을 살펴보았는데요, 여러분의 이름도 이 글에 등장했나요? 제 친구나 친구의 자녀 이름이 자주 등장해서 이름의 트렌드가 영향을 미치는구나라는 사실을 체감할 수 있었습니다.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각 시대별로 그 당시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를 이름에 녹인 것으로 보입니다. 유아 사망률이 높은 1940~50년대에는 오래 살기를, 경제 발전이 극대화된 1970년대에는 내 아이가 크게 성공하기를, 2020년대에 들어서는 세계 어디에서나 사용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이름에 담은 것처럼요.
전자가족관계등록시스템 통계서비스에서 2008년 이전 데이터까지 모두 제공했다면, 객관적인 데이터를 바탕으로 조금 더 다양한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았지만, ‘요즘은 이런 이름이 유행인가 봐’하고 추측하던 것을 데이터로 확인하는 의미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이후 세대에는 또 어떤 이름이 유행할지, 지금 촌스럽다고 느끼는 과거의 이름이 다시 유행하지는 않을지도 궁금해지네요! 여러분이 아이의 이름을 짓는다면, 혹은 개명한다면 어떤 이름으로 하고 싶으신가요? 유행하는 이름을 따르시겠어요? 아니면 독특한 이름을 지으시겠어요?
Editor. 브랜드 마케팅팀 귤젤리